Ⅰ. 서 론
항공운송 산업은 디지털 플랫폼과 데이터 기반 운영의 확산에 따라 거래구조 전반에서 변화를 겪고 있다. 디지털 플랫폼은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거래의 핵심 매개체로 기능하고 있으며, 항공운송 분야에서도 항공운송 서비스의 구조를 변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거래의 효율성과 접근성을 제고하는 반면, 운송 과정에 다양한 주체가 개입하는 구조를 형성함으로써 책임귀속의 기준을 복잡하게 만드는 불확실성을 초래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디지털 플랫폼이라는 개념 또한 별도로 정의 내려지지 않고 있다(Jung, 2021).
기존 항공운송인의 지위는 몬트리올 협약을 중심으로 계약상 운송인과 실제 운송인을 구분하는 구조에 기초하고 있다. 그러나 디지털 플랫폼이 운임 설정, 예약조건 제시, 정보제공 등 거래의 핵심 요소에 실질적으로 관여하는 환경에서, 계약당사자 중심의 규정만으로 거래의 지위를 판단하는 것은 문제의 소지가 있다. 특히 플랫폼이 단순한 중개를 넘어 거래조건의 형성과 서비스 제공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 지위를 계약형식에 따라 일률적으로 배분하는 기존 법제들에서 한계가 드러난다(Sur, 2026).
2026년, 유럽연합사법재판소(Court of Justice of the European Union, 이하 CJEU)에서 다룬 Verein für Konsumenteninformation(이하, VKI) v Royal Dutch Airlines(이하, KLM) 사례는 플랫폼이 개입된 항공운송 거래에서 운송인의 지위에 대한 판단기준을 보여준다. 해당 판례는 거래를 개별 계약관계로 보기보다는 하나의 통합된 구조로 파악하고, 그 중심에 있는 항공서비스 제공자에게 지위를 부과시키는 해석을 취하였다. 이는 디지털 환경에서 책임여부를 계약형식이 아니라 거래의 실질적 구조에 기초하여 판단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기존 연구는 항공운송인의 책임과 디지털 플랫폼의 문제를 각각 독립적으로 분석하는 경향을 보여 왔으며, 양자를 결합하여 지위 기준의 변화를 검토한 연구는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특히 디지털 플랫폼이 항공운송거래에 미치는 영향에도 불구하고, 항공운송인의 지위를 중심으로 분석한 연구는 드물다.
이에 본 연구는 VKI v KLM 판례를 분석하여 플랫폼이 개입된 거래에서의 지위판단 방식을 검토하고, 이를 토대로 디지털 플랫폼 환경에서 항공운송인의 지위에 대하여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Ⅱ. 디지털 플랫폼과 항공운송인의 지위와 한계
오늘날 항공운송은 단순히 물리적 운송행위에 그치지 않고,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계약되며 운송장(e-AWB)이 발행되기도 하고, 화물의 위치추적이나 여러 정보공유가 이루어지는 복합적 환경 속에서 수행된다. 그러나 ‘디지털 플랫폼’이라는 용어는 국제적으로 통일된 정의가 어렵고, 각 기관과 법제는 정책 목적에 따라 각각의 개념을 제시하고 있다. 예를 들어, OECD의 경우에는 온라인 플랫폼(online platform)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이를 인터넷을 통해 상호작용하는 두 개 이상의 서로 구별되지만 상호의존적인 사용자 집단(기업 또는 개인) 간의 상호작용을 촉진하는 디지털 서비스로 정의한다.(OECD 2019) UNCTAD는 플랫폼을 온라인 상에서 여러 당사자를 연결해 상호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메커니즘을 의미하며, 디지털 플랫폼은 이러한 메커니즘을 온라인 환경에서 제공하며, 동시에 중개자(intermediary)이자 인프라로 기능한다고 보고 있다. 이를 거래 플랫폼(transaction platforms)과 혁신 플랫폼(innovation platforms)으로 구분하고 있다. 거래 플랫폼은 다면시장(two/multi-sided market) 구조를 가지며, 온라인 인프라를 통해 다양한 당사자 간 교환을 지원하는 것으로 Amazon, Alibaba, Facebook, eBay, Uber, Airbnb 등을 예로 든다. 또한 혁신 플랫폼은 코드와 콘텐츠 생산자가 애플리케이션 및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으로 Android, Linux, MPEG 표준 등을 예로 들고 있다(UNCTAD, 2019).
EU의 디지털 서비스법(digital service act, DSA)은 플랫폼을 호스팅 서비스의 하위 범주로 정의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온라인 플랫폼은 단순히 이용자가 제공한 정보를 저장(hosting)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용자의 요청에 따라 그 정보를 대중에게 공개, 전달(disseminate to the public)하는 서비스 제공자를 의미한다고 규정하고 있다(regulation (EU) 2022/ 2065, Art. 3(i)). 한편, 미국은 디지털 플랫폼에 대한 단일한 일반 정의규정을 두기보다는, 경쟁법, 소비자보호법 및 통신규제 등 개별 법률을 중심으로 기능별·분야별 규율체계를 형성하고 있다(Goldman, 2024).
국제항공운송에서 항공운송인의 지위는 주로 1999년 몬트리올 협약(Montreal Convention 1999, 이하 MC99)에 의해 규율된다. 해당 협약은 국제항공운송에 관한 통일적 규범을 제공함으로써 항공운송인의 지위 범위와 책임 요건을 명확히 설정하고, 국제적 법적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을 주요 목적으로 한다(Moon and Hwang, 2025). 특히 MC99는 여객, 수하물 및 화물 운송에 관한 책임체계를 포괄적으로 규정함으로써 국제항공운송 분야의 법적 통일성을 확보하고 있다(Choi, 2026).
MC99의 핵심적 특징은 항공운송인을 중심으로 책임을 구성하는 이른바 운송인 중심 책임체계에 있다. 협약은 운송계약의 당사자인 항공운송인을 기본적인 책임 주체로 설정하는 한편, 실제 운송을 수행하는 자(actual carrier)와 계약상 운송인(contracting carrier)을 구분하는 이원적 구조를 채택하고 있다. MC99 제39조는 계약상 운송인이 체결한 운송계약에 따라 다른 자가 운송의 전부 또는 일부를 수행하는 경우를 규정하면서, “the contracting carrier”와 “the actual carrier”를 구별하여 정의하고 있다. 또한 제40조(respective liability of contracting and actual carriers)와 제41조(mutual liability)는 양자의 책임관계와 상호 법률관계를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는 항공운송이 복수의 사업자에 의해 수행될 수 있다는 현실을 반영하면서도, 궁극적으로는 운송계약을 중심으로 책임 주체를 판단하는 데 특징이 있다.
또한 MC99는 책임 유형별로 차등적인 책임체계를 채택하고 있다. 제17조는 여객의 사망 또는 신체상해에 대한 운송인의 책임을 규정하고 있으며(“Death and Injury of Passengers”), 제21조는 일정 한도 내에서는 무과실책임을 인정하고 그 한도를 초과하는 손해에 대해서는 운송인의 면책입증을 허용하는 이중책임체계를 규정하고 있다(“compensation in case of death or injury of passengers”). 또한 제19조는 지연으로 인한 손해(damage occasioned by delay)에 대한 책임을 규정하고 있으며, 제17조 제2항 및 제18조는 각각 수하물과 화물의 멸실·훼손에 대한 책임을 규정하고 있다. 나아가 제22조는 여객 지연, 수하물 및 화물 손해에 대한 책임한도(limits of liability)를 설정함으로써 항공운송인의 부담을 제한하고 있다. 이러한 책임체계는 항공운송의 특수성과 산업적 위험을 고려한 균형적 접근으로 평가된다.
전통적인 항공운송 공급사슬에서는 항공사, 화주 또는 승객, 포워더 등 각 참여자의 역할이 비교적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었다. 따라서 운송계약의 체결주체와 실제 운송수행자를 기준으로 책임을 판단하는 MC99의 체계는 일정한 설명력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 디지털 플랫폼의 확산으로 예약, 결제, 정보제공, 고객관리 및 사후서비스 기능이 플랫폼 사업자에게 집중되면서 공급사슬 구조 자체가 변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거래에 실질적으로 관여하는 주체와 법적 책임주체가 일치하지 않는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때문에 MC99의 운송인 개념은 본질적으로 운송계약의 체결 여부와 실제 운송 수행 여부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에서 일정한 한계를 가진다. 즉, 책임 귀속의 판단기준이 계약당사자 여부와 운송수행 여부에 집중되어 있어 거래 과정에서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제3의 주체에 대한 고려는 상대적으로 제한적이다(Hoeks 2010). 특히 디지털 플랫폼 환경에서는 운임 설정, 예약관리, 결제처리, 정보제공 및 고객응대 등 운송서비스의 핵심 기능이 플랫폼 사업자에 의해 수행되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으나, 기존 협약 체계는 이러한 역할을 독립적인 책임 판단 요소로 명시적으로 고려하지 않고 있다(Kołacz and Verheyen, 2025).
국제항공운송협회(International Air Transport Association, IATA) 역시 전자항공화물운송장(e-AWB)과 디지털 물류체계의 확산으로 항공운송계약 구조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기존 국제협약 체계가 이러한 환경 변화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IATA 2023). 특히 MC99는 플랫폼 사업자의 법적 지위나 중개 기능에 관한 별도의 규정을 두고 있지 않으며, 계약 체결과 운송수행이 분리되는 상황에서 책임 귀속 기준을 명확히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Kołacz and Verheyen, 2025).
이와 같은 한계는 디지털 플랫폼이 항공운송 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환경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플랫폼 사업자는 단순한 정보 제공자를 넘어 운송계약의 형성, 가격 제시, 예약 및 결제 과정에 실질적으로 관여하고 있으며, 경우에 따라 소비자가 인식하는 거래의 중심적 접점으로 기능하고 있다(Park et al., 2024). 사실 MC99는 이러한 플랫폼의 기능적 역할을 전제로 설계된 규범이 아니므로, 플랫폼이 개입된 거래구조에서 발생하는 책임 문제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
최근 CJEU의 VKI v. KLM 판결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이는 디지털 플랫폼 환경에서 항공운송인의 지위와 책임 범위를 재검토할 필요성을 시사한다.
유럽연합(EU)은 항공운송 분야에서 단순한 운송계약상의 책임을 넘어, 소비자 권익을 보호하는 규범 체계를 발전시켜 왔다(Lee, 2023). 특히 항공여객의 권리 보장을 강화하기 위한 다양한 입법과 판례를 통해, 항공운송인의 책임 범위를 확장하는 방향으로 법리를 형성하고 있다(EPRS, 2026).
EU는 항공운송 분야에서 승객 권리를 강화하기 위해 Regulation (EC) No 261/2004를 제정하였다. 이 규정은 항공편 취소, 지연, 탑승거부 상황에서 승객에게 일정한 보상과 지원을 제공할 의무를 항공운송인에게 부과한다(Moon and Hwang, 2025). 구체적으로 제5조는 항공편 취소 시 승객에 대한 보상을 규정하면서 “In case of cancellation of a flight”라고 명시하고 있으며, 제6조는 지연 시 지원 의무를 규정하면서 “expects a flight to be delayed”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또한 제7조는 비행거리에 따른 정액보상제도를 규정하고, 제9조는 “right to care” 원칙에 따라 식사, 숙박 및 통신수단 제공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또한 EU는 항공운송인의 지위를 실질적 서비스 제공구조에 맞추어 확대하는 방향으로 법리를 발전시켜 왔다. 전자상거래 지침은 정보사회 서비스 제공자의 책임 제한을 규정하고 있으며(Directive 2000/31/EC), 온라인 중개서비스 규정에서는 온라인 플랫폼과 기업 사용자 간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규범을 마련하였다(Regulation (EU) 2019/1150). 참고로 정보사회 서비스란 대가를 받고 제공되는 서비스, 원격으로 제공되는 서비스, 전자적 수단을 통해 제공되는 서비스, 서비스 이용자의 개별 요청에 따라 제공되는 서비스를 말한다(Directive 2000/31/EC Art.2(a)). 디지털 서비스법은 플랫폼의 책임과 의무를 보다 구체적으로 규율하고 있으며(Regulation (EU) 2022/2065), 항공운송 시장에서 디지털 플랫폼이 예약 및 운임, 정보제공 등의 핵심 기능을 담당하는 경우에 적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Uber Systems Spain(CJEU Case C‑434/15) 사건은 플랫폼이 단순 정보사회 서비스가 아니라 운송 서비스로 분류될 수 있음을 인정하였고, Airbnb Ireland(CJEU Case C 390/18) 사례는 플랫폼의 법적 성격을 정보사회 서비스로 한정하지 않고 거래구조와 실질적 역할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이는 항공운송 분야에서도 플랫폼이 단순 중개를 넘어 계약형성과 조건설정에 관여할 경우, EU 규정의 적용범위가 확장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결국 EU 규정들은 몬트리올 협약의 한계를 보완하면서, 항공운송인의 지위를 소비자의 권리 보호 중심으로 재구성하는 방향을 제시한다(Lee, 2023). 그러나 디지털 플랫폼이 개입하는 새로운 거래구조에 대해서는 아직 직접적인 규율이 부족하며, 이는 향후 판례와 추가 입법을 통해 구체화될 필요가 있다.
Ⅲ. CJEU의 VKI v. KLM 최신 판례분석
2026년 내려진 CJEU의 C45/24 사건은 온라인 중개플랫폼이 개입된 항공운송 거래에서 지위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에 관한 판단을 한 사례로, 디지털 환경에서 항공운송인의 지위에 대한 논의를 구체화하는 출발점이 된다.
본 사건은 오스트리아 소비자 보호단체인 VKI 가 네덜란드 항공사 KLM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이다. VKI는 항공권 구매과정에서 발생한 여행사(Opodo)의 중개수수료 환불여부와 관련된 약관의 적법성을 문제 삼았으며, KLM은 해당 환불의무의 범위를 둘러싸고 분쟁의 상대방이 되었다(CJEU C45/24, para.2).
소비자들은 온라인 예약 플랫폼(online travel agency, OTA)인 Opodo 여행사 포털을 통해 KLM 항공권(항공권 EUR1,958.34+ 수수료 EUR95.14, 총액 EUR 2,053.48)을 구매하였다. 이 과정에서 항공권 가격 외에 플랫폼이 부과한 중개 수수료(booking fee)가 함께 지급되었다. 이후 항공편이 취소되자, 항공사인 KLM은 항공권 운임 자체는 환불하였으나, 플랫폼이 수취한 수수료 부분은 환불대상에서 제외하였다. 이에 대해 VKI는 항공편 취소 시 환불은 소비자가 실제로 지급한 전체 금액을 기준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플랫폼 수수료 역시 포함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CJEU C45/24, para.8-11.).
본 사건의 핵심쟁점은 Regulation (EC) No 261/2004 제8조 제1항(a)의 “항공권 가격 전액환불”에 따른 환불범위에 중개수수료가 포함되는지 즉, 항공편 취소 시 항공운송인의 환불을 하는 범위에 온라인 플랫폼(중개자)이 부과한 수수료가 포함되는지 여부였다. VKI는 항공권 구매과정에서 수수료가 불가피하게 포함되므로 환불 대상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KLM은 Opodo가 독자적으로 책정한 수수료이며, 자신은 그 금액을 알지 못했으므로 환불의무가 없다고 항변하였다. 따라서 문제는 항공운송인이 중개수수료의 존재 및 금액을 인지하지 못한 경우에도 환불에 대한 책임을 지는지에 집중되었다(CJEU C45/24, para.16-19.)
CJEU는 항공편이 취소된 경우 항공운송인이 승객이 실제로 지급한 전체 금액을 환불해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여기에는 항공권 운임과 세금, 부가금뿐만 아니라 온라인 플랫폼이 부과한 중개수수료도 포함된다고 하였다. 법원은 승객이 항공권을 구매하기 위해 지출한 비용은 항공권 운송과 불가분적으로 연결된 것으로 보아야 하며, 따라서 항공사가 해당 수수료의 정확한 금액을 알지 못했더라도 환불의무는 존재한다고 명확히 하였다.
이는 Regulation (EC) No 261/2004의 승객 보호 목적을 실질적으로 구현하기 위한 해석으로, 환불거부가 승객에게 중개인을 상대로 별도의 소송을 제기하도록 강요하는 불합리한 결과를 초래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또한 법원은 온라인 플랫폼의 개입이 항공운송인의 환불의무를 제한하거나 면제하는 근거가 될 수 없다고 지적하였다. 플랫폼은 계약의 중개자로서 일정한 역할을 수행하지만, 항공운송 계약의 실질적 이행의 주체는 항공사이며, 따라서 최종적인 책임 역시 항공사에게 귀속된다는 점을 확인하였다(CJEU C45/24, para.24-41.).
VKI v. KLM 판결은 항공운송인의 책임을 계약 형식에만 한정하지 않고, 소비자가 실제로 부담한 비용과 거래의 실질적 구조를 기준으로 판단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특히 항공운송인이 온라인 플랫폼의 중개수수료를 직접 설정하지 않았음에도 환불책임을 인정한 점은 거래구조 전체를 통합적으로 파악한 해석으로 평가된다.
이 판결은 디지털 플랫폼이 개입된 항공운송 거래에서 책임 판단의 기준이 단순한 계약당사자 여부를 넘어 거래조건 형성, 결제구조, 환불절차 등 거래 전반에 대한 실질적 관여와 통제관계까지 고려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본 연구에서 기능적 통제란 거래조건의 결정, 예약 및 결제 관리, 고객서비스 제공 및 환불절차 운영 등 거래 전반에 대한 실질적 영향력 행사를 의미한다.
VKI v. KLM 판결이 단순한 소비자보호 판결을 넘어 디지털 플랫폼이 개입하는 항공운송 공급사슬에서 운송인 책임 판단기준의 변화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본다. 즉, 본 판결은 몬트리올 협약상 전통적 운송인 개념을 부정한 것이 아니라, 계약상 운송인과 실제 운송인이라는 기존 체계를 유지하면서도 디지털 거래환경에 맞추어 기능적으로 재해석할 필요성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된다. 따라서 향후 운송인 지위는 계약형식뿐 아니라 공급사슬 내 역할, 거래구조 및 기능적 통제 정도를 함께 고려하여 판단할 필요가 있다.
Ⅳ. 디지털 플랫폼에서 항공운송인의 지위에 대한 시사점
디지털 기술의 발전과 함께 항공운송 시장은 온라인 플랫폼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으며, 이는 전통적인 항공운송 계약구조에 중요한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Lee et al., 2025). 그럼에도 항공운송 분야에서 디지털 중개플랫폼의 법적 지위와 책임을 명확히 규율하는 법제는 아직 충분히 정립되지 않았다(Kołacz and Verheyen, 2025). 그 결과, 디지털 플랫폼이 거래 전반에 관여하는 환경에서는 기존의 운송인 개념만으로 책임구조를 설명하는 데 한계가 드러난다(Huh and Choi, 2024). 다음과 같이 나누어볼 수 있다.
첫째, 플랫폼이 개입하는 거래에서는 계약구조가 다층적으로 형성된다. 과거에는 승객과 항공운송인 간의 직접 계약이 중심이었으나, 오늘날에는 플랫폼이 예약, 결제, 정보제공 과정에 개입하면서 제3자가 거래형성에 참여한다(Lee et al. 2025). 이로 인해 계약당사자의 특정이 복잡해지고, 형식상 법적 관계와 실질적 거래관계 사이에 괴리가 발생할 수 있다(Kim and Kim, 2024).
둘째, 플랫폼의 역할은 단순한 정보중개에 그치지 않는다. 운임제시, 예약조건 설정, 서비스 비교 및 추천 등은 거래조건 형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며, 플랫폼은 사실상 계약의 성립과 이행 과정에 일정한 통제력을 행사한다. 그러나 책임은 여전히 항공운송인에게 집중되는 경향이 있어, 거래에 대한 실질적 통제와 법적 책임 간에 불균형이 발생한다(Pellicanò et al., 2024).
셋째, 데이터 기반 운영환경은 책임 판단의 기준 변화를 요구한다. 플랫폼은 실시간 정보공유와 추적 기능을 통해 운송과정을 더욱 투명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각 주체의 역할과 영향력을 새롭게 평가할 필요를 낳는다(UNCTAD, 2021). 따라서 전통적인 과실 중심의 책임만으로는 각 참여자의 역할과 책임을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고, 거래에 대한 정보 접근성과 통제 가능성 역시 책임 판단의 중요한 요소로 고려될 필요가 있다.
넷째, 현행 국제항공운송 법체계는 이러한 변화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MC99는 여전히 계약운송인과 실제운송인을 중심으로 책임을 구성하고 있으며, EU 규범 역시 승객보호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지만 플랫폼과 같은 새로운 행위주체의 법적 지위와 책임분배 기준을 명확히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다(Lee, 2023; Kołacz and Verheyen, 2025). 이는 플랫폼 시대의 운송인 개념을 재구성하기 위한 이론적 전환의 필요성을 의미한다.
VKI v. KLM 판결은 디지털 플랫폼 환경에서 운송인 지위를 형식적 계약관계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준다. 본 판결은 거래를 개별 계약의 집합이 아니라 소비자가 경험하는 통합된 거래구조로 파악하고, 그 구조 속에서 실질적으로 거래를 형성·통제하는 책임 주체를 확인하였다. 이는 디지털 플랫폼이 거래형성 및 이행 과정에 실질적으로 관여하는 경우, 계약체결 여부와 실제 운송수행 여부만으로 운송인 지위를 판단하기 어렵다는 점을 시사한다. 특히 플랫폼은 예약, 결제, 정보관리 및 환불절차 등 운송서비스의 핵심 기능에 관여함으로써 거래에 대한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한다. 따라서 플랫폼이 개입된 항공운송에서는 법률상 계약당사자 여부뿐 아니라 거래조건 형성, 소비자 접점 관리 및 정보통제 등 기능적 역할 역시 책임 판단의 중요한 요소로 고려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VKI v. KLM 판결은 몬트리올 협약상 운송인 개념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디지털 거래환경에 맞게 보완적으로 해석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결국 향후 항공운송인의 지위는 계약 형식이나 운송수행 여부뿐 아니라 공급사슬 내 기능 수행과 거래통제 정도를 함께 고려하여 판단될 필요가 있으며, 이는 디지털 플랫폼이 개입된 항공운송 분쟁에서 운송인 책임을 해석하는 중요한 기준으로 기능할 수 있다.